일본에서 돌아온 후 어르신들께 제대로 인사도 못드려서, 정식으로 한번 내려갔다 와야지 싶었는데 결국 마음만으로 끝나고, 귀국 후 근 1달, 벌초날이 되어서야 시골로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다가오면, 추석을 시골에서 쇠든 서울에서 쇠든 그 전 주쯤에 한 번 내려가 우리 산소와 문중 선산을 친척들과 함께 벌초하는 것이 우리의 약속입니다. 우리 큰 아버지가 몇대 안에서는 종손이라서, 가까운 남자 친척들의 사정을 확인하고 날짜를 잡은 것이 9월 3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는 큰 약속 없는 남동생, 시골에 인사를 드려야 할 저, 집혼자 남기 싫은 어머니까지 네 식구가 모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새벽 일찍 짐을 싸 출발했지만 역시나 같은 날을 잡았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지라 길은 무시못할 정도로 벌초 행렬로 길이 꽉 막혀있었습니다. 평소라면 세시간 여에 도착했을 길이 너댓시간이 되어 우리 산소에 도착한 시간에는 기다리다 못해 큰아버지가 혼자 벌초를 시작한 다음이었습니다. 예초기로 웃자란 풀을 다듬는 큰아버지와 손에 낫을 들고 예초기가 들어가지 않는 곳의 풀을 다듬는 막내 작은 할아버지. 뒤늦게 합류한 우리 가족의 할 일은 갈퀴로 잘려진 풀을 긁어모아 수풀 속에 버리는 것 뿐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벌초 풍경입니다. 잘 보시면 아무것도 안하고 멀뚱히 서서 아버지 일하는 걸 구경하는 제가 보입니다. photo by namimami
어느 정도 벌초가 진행 될 즈음, 큰 아버지가 휴식 선언을 하시며, 시내에서 밥을 사먹은 후 선산으로 벌초 하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선산과 곳곳에 떨어진 선조들의 묘를 돌며 벌초를 하기 위해서 잡은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바지런히 움직여, 벌초 중이었던 우리 산소의 묘들은 잠시 내버려 둡니다.
종파 소속의 묘들을 전부 손 본 다음에는 시내의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제 경우는 시제 등의 큰 일은 전부 땡땡이 치는 편이라 일년에 한번 볼까 말까한 친척 어르신들과는 거기서 마지막이 되었고, 그 대로 우리 가족과 큰아버지는 근처에 있는 시골집으로 향했습니다.
ㅅ의 시골 집은 지금 비어있습니다. 젊은 시절 이후 계속 서울 생활 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자식들 다 자리잡자 고향 돌아가시겠다 하여 내려가셨지만, 그 후 할머니 할아버지 두분 다 돌아가셔서 한번 개보수를 거쳐 반 현대식으로 되어있는 한옥집은 지금 사람이 없이 을씨년한 상태입니다. 물론 몇주에 한번 아버지 형제들 가족이 번갈아 내려가(주로 큰아버지 가족이 내려가시는 것 같지만)고, 같은 담 안에 있는 별채에 사는 가족들이 시골 집 사정을 봐준다고 하지만 사람의 훈기가 없는 집은 빠르게 나이를 먹는 것 같습니다. 제 귀국 직전의 큰 비에 이불장이 흠뻑 젖어 그 뒷처리도 아직 하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사람이 없는 집이 급격히 나이를 먹는 걸 보면서 더 자주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행동에 옮기려면 돈도 시간도 필요하니 아직 한달 넘게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몸으로서는 부담이 되지만, 마음만이라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촬영 및 편집에는 어머니가 수고해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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